우크라이나는 필자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나라다. 1996년 대우자동차가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자동차 회사인 오토쟈즈(AUTOZAZ)와 합작회사를 설립하면서 그곳의 공장장으로 발령이 났다. 구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지 몇 해 되지 않은 시점에 3년간 있으면서 수년간 폐쇄돼 낙후된 공장을 재건하고 새로운 자동차 생산 설비를 보완했다. 동구권에서 제일 깨끗하고 품질 좋은 차를 만드는 공장이 되어갈 무렵인 2000년도 IMF 사태로 아쉬움을 남긴 체 철수해야 했던 추억이 서려 있는 곳이다.

생활과 문화, 언어가 다른 현지인들과 함께 땀 흘리며 일하면서 그들과도 정이 들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인들과 교류를 하고 있다. 당시 필자는 자포로지라는 공업도시에 있었고,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예프에는 가족들이 살고 있어 자주 방문했었다.

키예프는 지역적 특성으로 서구와 러시아 문화의 합류로 1500년을 거슬러 다양한 역사적 유물과 예술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다. 11세기 요새인 골든 게이트, 국립 오페라하우스, 비잔틴 양식의 세인트 마이클 수도원을 비롯한 수많은 유명 수도원이 있고, 오렌지 혁명의 역사적 장소인 독립광장은 웅장하면서도 권위와 위용을 자랑한다. 공교롭게 나는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밀려 넘어오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접 도시인 폴란드 루블린에 거주하고 있다. 러시아의 미사일 포격을 받고 키예프가 함락 직전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인들의 대동단결과 서방국가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러시아 도발의 무모함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우크라이나 공습을 반대하는 시민들(사진 = PIXELS)
우크라이나 공습을 반대하는 시민들(사진 = PIXELS)

NATO 가입을 희망하는 우크라이나, 이를 위협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는 면적이 우리나라의 6배정도 되지만 인구는 4,400만으로 우리나라보다 적은 수다. 우크라이나의 인당 GDP는 3,760달러(2020년 기준)로 동구권 최하위 수준이다.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와 함께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끼어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중국과 자유진영의 접경 지역에 있는 것과 유사하다.

우크라이나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희망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할 경우 NATO가 러시아의 역사적 미래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으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직간접적으로 반대해 왔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공의 빌미를 준 결정적인 것은 약화된 군사력과 국론 분열이다. 1991년 구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우크라이나의 재래식 군사력은 유럽에서 최강이었다. 당시 총 병력 78만 명, 전차 6,500대, 장갑차량 7,000대, 화포 7,200문, 항공기 2,000대 등을 보유했다. 그러나 1994년 부다페스트 평화 협정 이후 특별한 대책 없이 모병제 도입 등 군대 규모를 줄이고 군사 훈련도 게을리했다. 결과적으로 2014년 3월 11일, 크림반도를 상실할 위기에 직면할 때 우크라이나의 전체 병력 20만 명 가운데 즉각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6,000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600대의 항공기 중에서 가동 가능한 것은 100대 미만이었다. 유럽 최강 수준의 재래식 군사력을 보유한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결국 2014년도 크림반도 위기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어떠한 조치도 실행할 능력이 없었다. 특히, 크림반도에 주둔했던 우크라이나 군인 대부분이 저항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급여 수준이 좋은 러시아 군인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또 하나는 국론 분열이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러시아로부터 분리독립된 이후 국론 분열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우크라이나 인구 중 약 20%가 러시아인이고 지금도 우크라이나어보다는 러시아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필자가 그곳에 있을 때도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구 소련 시절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국회에서도 친 러시아계와 친 서방계가 항상 대립각을 세워 왔다. 이런 현상이 결국 2014년 크림반도가 국민투표에서 크림 공화국으로 러시아에 편입되는 결과를 만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한 시사점... 지속적인 경제 성장, 국론 분열 통합, 국방력 강화 문제를 뒤돌아 볼 것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은 없는지 한번 생각해 본다. 첫째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다. 국력의 기본이 되는 것은 경제력이다. 꾸준한 경제성장 없이는 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수준으로 가봉만도 못한 상황에서 이제 35,000달러로 350배가 성장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1993년 인당 국민소득이 2,156달러였는데 2020년 3,726달러로 성장 정체기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경직된 사고다. 이 사회에서 훈련된 사람들은 시키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 혁신이란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충돌에서 만들어지는데, 아이디어 충돌 기회가 없으니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우수한 우리 국민들이지만 어렵던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투철한 철학과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와 열정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1세대 기업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리더를 잘못 만나면 국민들만 고생한다.

둘째는 국론 분열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온 국민이 하나가 되면 외부의 침략을 면할 수 있다. 국론 분열이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산주의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책 몇 권 읽고 공산주의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공산주의의 큰 장점은 다 함께 잘 사는 것인데, 실제 공산주의 국가들은 빈부격차가 더욱 심하다. 러시아에서 분리 독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우크라이나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이러한 현실을 실제로 보았다. 국민들은 먹을거리가 없는데, 키예프 드니프로 강변에는 호화별장이 즐비하고 벤츠 차량이 수도 없이 들락거린다. 모스크바 근교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수백 평의 저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셋째는 국방력이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독립과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부다페스트 협정을 믿고 핵을 포기하고 국방비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군대를 감축하고 훈련을 게을리 해왔다. 국론은 분열되고 군의 전투력은 약화되어 있고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와 유럽의 요충 지역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빌미를 주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포악한 침략주의자들 앞에서는 평화협정 같은 것은 하나의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불량배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힘이 있던가 힘센 형이라도 있어야 한다. 우리도 북한 침공을 막으려면 북한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보유하던가 즉각 지원이 가능한 혈맹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시점에서 한미 동맹 강화가 중요한 이유이다. 막연하게 양다리 걸치다 잘못하면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방을 튼튼히 할 철학과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선거다.

 

 대우자동차 생산기술 담당, 한국 GM부평 사업본부장,  GM 폴란드 법인 부사장을 역임했으며, 중견기업 한양정밀 사장을 지냈고, 현재 RBPS 경영 연구소장,  한미약품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현장 사원으로 시작해 사장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 국내 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RBPS 경영 혁신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현재 RBPS 경영 연구소를 설립해 강연, 컨설팅, 방송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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